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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 링 위의 전설이자 인권의 아이콘

by 뉴스픽100 2025. 5. 11.

무하마드 알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싱 선수 중 한 명일 뿐 아니라, 흑인 인권, 반전 운동, 종교적 자유에 대한 강렬한 신념을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링 위에서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넘어, 사회적 발언과 행동으로 전 세계에 강한 울림을 남겼으며, 스포츠가 단지 기록과 기술의 경기를 넘어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삶은 강렬했고, 메시지는 명확했다. ‘나는 최고다(I am the greatest)’라는 그의 선언은 단순한 자만이 아니라, 억압 속에서 피어난 자존의 외침이었다.

링 위에서 탄생한 시대의 목소리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1942~2016)는 본명 카시어스 마르셀러스 클레이 주니어(Cassius Marcellus Clay Jr.)로 미국 켄터키주의 루이빌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자전거 도난 사건을 계기로 경찰관이자 복싱 트레이너인 조 마틴에게 권투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는 곧 그의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된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그는 이후 프로로 전향해 전설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알리는 단지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를 넘어선 존재였다. 그는 언어의 리듬을 이해했고, 미디어와 대중을 활용할 줄 알았으며, ‘벌처럼 쏘고 나비처럼 날아다닌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는 말처럼 링 위에서의 움직임은 예술 그 자체였다. 자신감 넘치는 도발, 시적 언변, 화려한 경기 운영은 그를 단숨에 미국 스포츠계의 스타로 만들었다.

1964년, 그는 당시 무패의 챔피언 소니 리스턴을 꺾고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며 일약 스타가 되었지만, 그보다 더 큰 충격은 그 직후의 결정이었다. 그는 흑인 이슬람 공동체인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가입하고,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하며 종교적·정치적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이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 매우 급진적인 행보였고, 백인 보수층과 보수 언론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그러나 알리는 자신의 선택에 단호했다. 그는 더 이상 백인 주류 사회가 부여한 이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자신을 정의할 권리’와 ‘신념에 따른 선택’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많은 흑인 청년들에게 자존감과 정치적 각성을 촉발시킨 사건이었고, 이후 흑인 인권 운동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챔피언 벨트보다 중요한 신념

무하마드 알리가 남긴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는, 1967년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 징집을 통보했을 때였다. 알리는 이를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들과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나를 깎아내리지 않았다. 나를 ‘니거’라 부르지 않았다. 나의 적은 이곳 미국 안에 있다.”

그의 이 발언은 미국 사회에 폭풍을 몰고 왔고, 알리는 즉시 복싱 라이선스를 박탈당했으며, 5년형과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링 위에서 쫓겨났고, 세상은 그를 ‘배신자’ 혹은 ‘영웅’이라 불렀다. 그는 법정 투쟁을 이어갔고, 결국 1971년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그의 병역거부를 인정한다.

알리는 이 시기를 두고 “가장 힘든 순간이었지만, 나의 가장 위대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명성과 돈, 커리어를 잃을 각오로 정의와 신념을 지켰고, 이 행보는 단지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 인권,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라는 근본적 가치를 일깨운 역사적 사례로 남게 된다.

복귀 후 그는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켄 노턴 등 당대 최고의 복서들과 맞붙으며 전설적인 경기를 이어간다. 특히 1974년 자이르에서 열린 ‘럼블 인 더 정글(Rumble in the Jungle)’ 경기에서 조지 포먼을 상대로 펼친 승리는 전술적 천재성과 인간 승리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압박을 견디며 상대의 체력을 소진시키는 ‘로프 어 도프(Rope-a-dope)’ 전략을 선보였고, 경기 후반 치명적인 반격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알리는 3차례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며 복싱 역사상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웠고, 경기 스타일뿐 아니라 인간적 품격, 정치적 발언, 종교적 신념으로도 후대의 운동선수와 사회운동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 세레나 윌리엄스 등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그를 '최고(GOAT)'로 언급하는 이유는 단지 그의 실력 때문만이 아니다.

 

나는 최고였다, 그리고 나는 진실을 말했다

무하마드 알리는 1984년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이후에도 활발한 사회활동과 자선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유엔 평화대사로 활동하며 전쟁과 갈등 지역을 방문했고, 난민과 장애인 지원을 위한 다양한 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말이 흐릿해졌고, 움직임이 둔해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링 위의 영웅으로 남아 있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를 점화하는 장면은 전 세계인을 눈물짓게 했다. 떨리는 손으로 성화를 든 알리의 모습은, 육체는 병들었지만 정신은 꺾이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기 삶의 모든 장면에서 ‘인간 존엄’이라는 키워드를 실천한 인물이었다.

2016년 세상을 떠난 뒤, 미국 전역과 전 세계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가 남긴 삶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단순한 스포츠 챔피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대의 ‘목소리’였다. 그는 흑인으로, 무슬림으로, 운동선수로, 활동가로, 인간으로서, 자신이 믿는 바를 끝까지 지켰고,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세상을 바꾸는 길을 택했다.

“나는 링 위에서 수많은 상대를 이겼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믿는 바를 위해 싸웠다. 나는 최고였다. 그리고 나는 진실을 말했다.” 이 말처럼, 무하마드 알리는 모든 싸움의 끝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그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당신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침묵하지 않을 것인가?” 무하마드 알리는 그 어떤 외침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답한다. “당신 자신을 믿어라. 그리고 결코 물러서지 말라.”

 

무하마드 알리